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꽤나 오래전부터 쓰려고 했던 내용들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겨우 쓰게 되네요. 2012년 아이유의 스무 살의 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팬으로서 함께 해왔기에 그녀가 20대에 이룩한 것들과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30대의 아가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 싶어요.
나를 찾아가는 시간
아이유의 20대를 온전히 바라본 팬의 입장에서 그 시간들을 한마디로 짧게 표현한다면 "아이유의 20대는 자아를 완성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남이 만들어준 자아보다 자기 스스로 만든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할까요. 일찌감치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얻으며 신드롬에 올랐지만 그 소녀 판타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스물셋 [CHAT-SHIRE] 에서 혼돈의 자아를 보여주다가 결국 스물다섯 [Palette]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물일곱 [Love Poem]에 와서 자신을 그렇게 괴롭혀왔던 그 판타지마저 끌어안으며 비로소 자신의 자아를 완성시킵니다.
관련 글 - 자신을 믿게 된 아이유
관련 글 - IU 미니 5집 [Love poem] 리뷰 - 시간의 바깥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위 2개의 글을 읽어보시면 아마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이렇게 완성된 자아는 [LILAC]을 통해서 완전하게 표현되었죠. [LILAC]은 아가수의 20대를 정리하는 의미와 더불어 30대의 프리퀄을 보여주는 앨범입니다. 그중에서 그 내용들을 대표하는 곡을 고르자면 '아이와 나의 바다'와 '어푸'를 꼽을 수 있죠.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와 나의 바다'는 아이유의 20대 자아 찾기를 함축한 내용입니다. 이에 반해 '어푸'는 이렇게 완성시킨 자아를 통해 30대에 대한 포부를 당차게 표현한 곡이 되겠습니다.
바다
사실상 지은양의 자아 찾기는 [Love Poem]에서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시간의 바깥'을 통해 이 부분은 충분히 설명되었구요. 아가수의 노래 가사들은 이 오랜 자아 찾기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른바 'dlwlrma Universe'라고 하는 그 세계관 말이죠. 이미 자아를 완성시킨 아이유양은 더 이상 이 내용으로 써 내려갈 것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라일락'을 통해 완벽한 이별을 노래하게 된 거죠.
앞서 '아이와 나의 바다'와 '어푸'를 잠깐 언급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두 곡의 배치와 곡에서 사용되는 배경인 '바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팬분들이시라면 아가수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걸 아실 거예요. 그래서 '효리네 민박'에서도 같이 패들 보트를 타자는 제안에도 감히 타고 나갈 생각은 못하고 해변에서 빈 노 젓기만 한 거죠.
'아이와 나의 바다'에서의 그 바다는 지은양의 자아 그 자체입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자아를 외면할 때는 돌아가야 할 바다였지만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겠다는 아이유에게 바다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푸'의 배경 또한 바다인 겁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두려워했던 것을 바다로 투영해서 '어푸'를 통해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며 그저 재미있는 놀이터라고 선언하네요.
Over the Sea
역시나 팬이시라면 아실 겁니다. 지은양이 '모아나'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요. 모아나는 섬을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섬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 떠나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아가수는 이때부터 이미 '바다'를 넘어서 나아가고 싶지 않았나 싶어요. 현실에서는 여전히 물을 무서워하겠지만... ㅎㅎ 10년 넘도록 쭉 지켜봐 온 아이유양은 언제나 자신을 막아서는 것들에 묵묵히 도전해서 이겨내 왔습니다. '어푸'를 듣다 보면 이런 모아나를 동경하는 지은양이 보여요.
CHAT-SHIRE : where you want to get to
앨리스 : Would you tell me, please, which way I ought to go from here?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줘.)
체셔캣 : That depends a good deal on where you want to get to.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앨리스 : I don't much care where.
(어디든 상관없어.)
체셔캣 : Then it doesn't much matter which way you go.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잖아.)
위 대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와 체셔캣과의 유명한 대화입니다. [CHAT-SHIRE]가 나왔을 때 앨범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많았는데, 앨범 컨셉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였기 때문에 체셔 고양이에 대한 부분들도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운 아가수의 자아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에필로그'의 가사처럼 아무런 의문 없이 이 다음으로 가는 지은양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20대 아이유의 노래들에는 모두 아가수의 생각들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아 찾기'가 있었죠. 이제 그런 것들을 모두 완성시킨 30대 아가수는 어떤 생각들을 노래에 담게 될까요? 누군가는 이제 쓸 얘기가 없는 거 아냐?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랜 팬으로 지내온 저로서는 '어푸'에서 "더 재밌는 걸 보여줄게"라고 말한 아이유를 믿어요. 바로 그래서 30대 가수 아이유가 더 기대됩니다.
정규 3집 [Modern Times]의 '분홍신'에는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아이유 소녀 판타지를 사실상 그려낸 김이나 작사가의 선물과도 같은 가사인데요. 이 멋진 선물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이유는 이후로도 쉬지 않고 걸어왔고 언제나 맞는 길을 찾았습니다. 30대에도 쭉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새삼 새 노래에 대한 갈증이 마구마구 올라옵니다. 30대가 되면 좀 천천히 하겠다는 지은양과 2023년에는 본격적으로 달려보겠다는 지은양 중에 어떤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혼란스럽지만... 기다리면 곧 나오겠죠. ^^; 그럼 7월 이벤트를 기다리며 이만 글을 마쳐보겠습니다. 아이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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