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스물셋, 팔레트, 에잇. 그리고 스물아홉 아이유가 보내는 유애나송
아가수의 20대 일대기를 담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책 같은 이번 정규 5집 [LILAC]에서, 첫 번째 트랙인 '라일락'이 인트로이자 목차 역할을 하고 있다면 에필로그는 책 말미에 나오는 Thanks to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아웃트로이면서 실제로는 유애나, 팬들,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모든 대중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하는 내용이죠.
'에필로그'를 가만히 듣다 보면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요. 저처럼 아가수의 20대를 함께 겪으며 지내온 팬들이라면 더욱더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리기 힘드실 겁니다. 처음 리뷰를 쓸 때 '주마등'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에필로그'를 들을 때야말로 지난 9년간의 '주마등'이 마구 스쳐 지나가면서 기뻤고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가사를 가만히 읽다 보면 마치 6주년 팬미팅에서 지은양이 읽어준 자필 편지가 떠오릅니다. 6주년 팬미팅은 팬미팅을 지속적으로 하기 시작한 첫 팬미팅이었는데요. 당시 아이유양은 직접 빼곡히 적은 편지 몇 장을 들고 직접 읽어주었습니다. 현장에서 그 내용을 들을 때 가슴 벅찼던 순간이 지금도 떠오르네요. 아래는 그 내용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편지는 어떤 팬 분에게 돌아갔는데 이 분도 정말 감동적이었는지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도 인증을 하고 집에 가서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더라고요. 구글에서 검색하면 보실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꼭~~ 보세요. ^^ 이하 6주년 팬미팅 손편지 내용입니다.
나는 우리 팬들한테서 정말 많은 힘을 얻는다고, 나는 내 팬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계속 계속 표현하고 싶어요. 우리 팬들이 저한테 직접적으로 주는 마음에 비하면 정말 티끌만 한 표현들이지만요.
그래서 혹시 그게 섭섭하고 오해가 생길 때에는 또 미안하다고 표현할 거예요. 그게 다 전해져서 여러분이 벽에다 대고 혼자 얘기하는 거 같은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언젠간 아이유보다 당장 해야 할 업무나 출퇴근이, 시험이, 눈앞에 애인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때가 오잖아요? 그럼 그때 가서 이제 팬질 손 털자 할 때 하더라도 내가 내 존재도 모르는 사람한테 혼자만 일방적으로 시간 낭비했구나, 쓸데없는 짓 했구나, 하면서 후회하지는 않게 해주고 싶어요.
적어도 완전히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내 덕분에 아이유가 더 반짝반짝할 수 있었고 행복해했다는 정도의 확신은 가질 수 있도록 저도 저 나름의 방식으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줄게요.
그러니까 그냥 여러분이 짐작하는 거보다도 아주 약간 더 제가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거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6주년 손편지 내용 중에서...
지금은 이제 아가수가 워낙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소통하고 있어서 팬카페에서 팬들과 댓글을 주고받는 일이 드물어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프롬유를 통해 수천 개의 댓글로 소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연예인도 그다지 많지 않은 터라 타 팬덤에서도 부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였죠. 하지만 공방을 가거나 해보면 아가수가 그리 살갑게 대해주지는 않음에 실망하시는 분도 있었을 겁니다. 지은양이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낯선 사람과 쉽게 말을 할 만큼 넉살도 좋지 못하고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 어쩌면 다른 연예인들이 공방에서 팬들에게 친숙하게 이야기하고 하는 부분들이 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아가수는 자신의 이런 모습 때문에 팬들이 혹시라도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위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게 아이유는 팬들 덕분에 행복하기 때문에 나 또한 당신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은양이 조금 더 팬들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 당시 위 내용을 들었을 때 울컥해서 집에 돌아갈 때도 감동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내가 이런 가수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러웠고 팬이 되기로 한 것이 정말 잘 한 선택이구나 했습니다.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는지
나를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우릴 위해 불렀던 지나간 노래들이
여전히 위로가 되는지
가사 첫 줄부터 폭풍 감동이... ㅠㅠ 진심으로 2012년 6월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첫 콘서트를 보고 나서 이 가수를 내 평생의 디바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죠. 평생을 함께할 가수를 만나서 돌아오는 내내 흥분되었고 정말 기뻤습니다. 사랑... 아이 부끄... 가정이 있는 몸인데... ^^; 지은양이 러브 포엠을 통해 자신의 사랑이 진심이기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던 것처럼 그동안 마치 가족처럼 사랑해왔던 아이유양이었던 터라 저 또한 부끄럼 없이 사랑하노라고 말할 수 있네요.
"우릴 위해 불렀던..."에서 저는 엄청 감동했는데요. 여전히 위의 편지처럼 아가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님을 말합니다. 그래요. 비록 우리가 아이유양의 노래를 들으려고 콘서트에 가지만 우리도 아가수가 마이크를 넘기면 정말 열심히 노래하잖아요. 우리가 또 가수 닮아서 노래도 잘합니다? ^^; 그렇게 하나씩 쌓아온 그 노래들의 기억이 가끔씩 떠오를 때 정말로 삶의 힘이 되노라고 말하고 싶네요.
짧지 않은 나와의 기억들이
조금은 당신을 웃게 하는지
삶의 어느 지점에 우리가 함께였음이
여전히 자랑이 되는지
요즘도 옛날 영상들을 보면서 웃곤 합니다. 장난기 가득한 마음으로 달려가서 아가수를 빵 터지게 했던 '2012 차카게 살자' 공연 영상은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오죠.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입니다. 옛날에 지은양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겠다" 라구요. 그게 벌써 9년 전인데.. ㅎㅎ 이미 그때부터 당신은 저에게,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가수였습니다. 늘 우리라고 말해주는데 어떻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당신이 이 모든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끄덕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오 충분히 의미 있지요
멋쩍은 이 모든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해준다면
그것만으로 글썽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오, 모르겠죠 어찌나 바라던 결말인지요
여기서 울컥하지 않으신 분 있나요? 진짜 이 부분을 들을 때 어찌나 가슴이 요동치던지... 아마도 콘서트에서 '에필로그'를 불러준다면 이 부분에 맞춰서 "그렇다!" 라고 다들 외칠 거라는데 500원 걸겠습니다. ^^; 플래카드에 '그렇다'라고 적어서 보여주는 이벤트도 있을 거라는데 역시 500원~~ 대부분의 팬들이란 자신의 스타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지은양 역시 바라던 삶이라고 하네요. 우리 모두가 바라던 결말입니다. ㅠㅠ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렇게 흘러가요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겠죠
가능하리라 믿어요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 다음으로 가요
툭툭 살다보면은 또 만나게 될 거에요
그러리라고 믿어요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는 건... 종교가 바로 생각나네요. 여러분 아이유 믿고 천국 가세요~ ^^ 사실 전국 곳곳에 아가수 팬이 없는 곳이 없죠. 요즘 광고주들이 덕질하는 거 보면... ㅎㅎ 지은양은 우리가 서로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디든 함께라고 합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가족이나 연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아... 감동이네요.
툭툭 살다 보면 만나게 될 거라니... '어푸'에서 지겹게 보자더니만 여기선 막 만나려고 하지 않아도 만나게 될 거라고 합니다. 우린 이미 그런 사이인 거죠. 오랜 친구는 매일 같이 연락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주 보게 되잖아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만나기 힘든 시기지만 곧 만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 밤에 아무 미련이 없어 난
깊은 잠에 들어요
- 에필로그 -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 무릎 -
'무릎'의 가사를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잠이 오지 않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지은양이 늘 '불면증'에 대해서 말해왔고 누군가의 숙면을 기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잠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데 이제 아무 미련 없이 깊은 잠에 든답니다. 아가수는 알까요? 팬들이 늘 바라던 그 깊은 잠이라는 걸요. 그리고 깊은 잠은 곧 사랑이라는 걸...
어떤 꿈을 꿨는지 들려줄 날 오겠지요
들어줄 거지요?
- 에필로그 -
단잠 사이에 스쳐간
봄날의 꿈처럼
- 라일락 -
'라일락'에서 20대의 꿈을 이야기하고 '에필로그'에서 30대에서 꾸게 될 꿈을 말합니다. [LILAC] 의 첫번째 트랙과 마지막 트랙에서 이렇게 말함으로서 수미상관 구조를 보여주네요. 이런 부분들이 작사가로서 프로듀서로서 아이유양에게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해요.
요즘이야 지은양이 자신의 감정 표현을 곧잘 하는 편이지만... 옛날에는 정말 로봇 같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인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종종 팬들이 아가수를 울리려고 온갖 이벤트를 하며 이래도 안 울어? 하는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지은양은 미안하지만 자신이 정말 울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팬들을 다독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모던 타임즈' 콘서트 때... 홍시 같은 색의 니트를 입고 앵앵콜을 하던 중 아가수는 유재하님의 '가리워진 길'을 불렀습니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렇게 노래를 마친 후에 "나의 힘이 되어 줄 거지요? 나의 길이 되어 줄 거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가슴 찌르르한 기억은 여전히 잊히지 않네요. 콘서트 중에 지은양이 직접 관객들에게 자신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음을... 그리고 솔직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못했음을 고백했기에 이 말이 더욱 가슴에 박혀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다스러웠던 저의 20대 내내,
제 말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이야기 나눠 주신
모든 청자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스물세 살의 아이유도,
스물다섯의 아이유도,
작년의 아이유도 아닌
지금의 저는
이제 아무 의문 없이 이 다음으로 갑니다.
안녕♥
아가수는 계속 자신의 나이를 주제로 그때의 자신을 노래하였습니다. 스물세 살의 '스물셋', 스물다섯의 '팔레트', 작년 스물여덟의 '에잇'... 이렇게 자신을 노래하는 것을 수다스러웠다고 하다니... ㅎㅎ 그리고 그 노래를 들어주고 사랑해준 것을 함께 이야기 나눠 주었다고 하네요. 왜 이렇게 착한 사람일까요?
'에필로그'를 듣다 보면 어쩐지 목소리가 '유애나송'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노래에 비해 비교적 날 것 같은 목소리로 불러줘서 그럴까요? 스무 살에 불러준 '유애나송' 이 어느새 9년의 시간이 흘러 '에필로그'로 돌아온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모던 타임즈' 때의 기억처럼 이 '에필로그'도 앞으로 한참 남은 아가수와의 시간들 속에 평생 잊지 않고 기억될 듯합니다. 또 봐요 아가수~ 당신의 이야기를 평생 들어줄게요. 아이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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