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뮤비를 보면서 바로 글 올릴까 하다가 운동 갔다가 걍 자버렸네요. ㅎㅎ
다들 뮤비 잘 보셨죠? 소격동 노래 자체도 계속 들으면 들을수록 디테일이 보이는 훌륭한 음악이지만 뮤비도 세세한 부분부분 신경쓴 곳이 많네요. 아시다시피 이번 뮤직비디오 감독님도 역시나 황수아 감독님입니다. 이전에 서태지님이 황수아 감독님과 작업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소격동 아이유 버전의 유통도 로엔이 하고 뮤직비디오 제작도 황수아 감독님이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번 소격동에서 서태지님이 아이유양과의 작업에 많은 배려와 정성을 쏟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소격동 라이브 무대도 콘서트에서 꾸민다고 하네요,. 유희열, 윤상, 이적, 윤종신,.. 훌륭한 선배들과의 좋은 인연이 가득한 지은양이지만 서태지라니... 이 인연이 앞으로 아가수에게 어떤 에너지를 줄 지 가늠조차 안되는군요.^^;
뮤직비디오의 시점은 정확하게는 현재입니다. 화자 또한 뮤비에서 나오는 아이유양 그대로죠. 그것은 소격동의 가사 진행을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습니다.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널 떠나는 날 사실 난..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 거예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여기까지는 현재의 심정입니다. 뮤비를 다 보신 분들이니 역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마지막에 아가수가 초반에 나온 바람개비를 들고서 다시 떠난 집으로 찾아오죠. '지금도 그대로 있죠' 라는 가사를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안고 있는 옛날 살던 집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예전의 아름다움이 있는 이 마을에 살고 싶다 라는 말을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과거의 회상입니다.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렜죠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어느 날 갑자기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내 어린 마음도
그 시냇물처럼 그렇게 말랐겠죠
너의 모든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소년과 소녀의 만남은 조금은 긴장감 있게 다가옵니다. 당시에 독서실에서 나오고 택시를 탄다는것... 그리고 무려 북촌에 살고 공부할 때 간식으로 카스테라가 나온다는걸 보면 소년은 제법 유복한 집안에서 사는 것 같아요.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고 있던 소년과 무언가에 쫓기듯이 택시에 탄 소녀와의 만남은 이 둘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아저씨 쫌만 가서 내릴꺼에요."
이런 대사는 옛날 한국 영화 등에서 보면 뭔가에 쫓기는 사람들이 잠시 몸을 피할때 자주 나오던 대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미 이 소녀는 어떤 파국을 만난 것이 아닌가 하네요. 소격동 사건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실텐데.. 그냥 개개인의 인권이 국가의 목적에 의해 마음대로 좌지우지 되던 시절의 아픔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간단하겠습니다.
소녀의 옷차림은 뮤비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옷차림은 점점 따뜻한 차림으로 바뀌죠. 시간이 어느 어느 정도 흘러간다는 소리입니다. 소년과 소녀는 첫 만남 이후 종종 만나게 되죠. 마치 소설 '소나기'에서의 소년, 소녀처럼 두 청춘남녀는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급격한 감정의 진전이 이뤄지죠. ㅎㅎ(소녀의 뽀뽀라니... 당시 시대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소녀네요. ^^)
교련복 입고 지나갈 때 소녀가 종이배를 전달하는 장면에서 보시듯이 소녀는 이미 정상이 아닌 상황 같습니다. 표정도 조금 정상이 아닌듯 하고 암튼 심신이 지쳐있는 느낌이었구요. 다른 소년들이 기피하는 걸 보면 (소년이 소녀를 알아보고 다가가자 다른 학생이 소년을 잡아끌죠.) 이미 소녀가 당한 현실을 다들 알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그녀를 받아들이죠.
혹시나 이것을 눈여겨 보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뮤비속 영상 비율에 대한 부분인데요. 아가수가 노래하는 장면은 모두 16:9 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뮤비의 영상은 4:3 비율이죠. 하지만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소년이 손전등을 켜는 순간부터 화면은 16:9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참 애매합니다만... 시간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소격동의 가사를 보면 "하지만 나에겐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가않죠. 그저 되뇌이면서 되뇌이면서 나 그저 애를 쓸 뿐이죠" 에서 보이듯이 뮤비의 구성은 기억을 되뇌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면속 비율이 4:3이겠죠. 하지만 소년의 손전등이 켜지는 순간부터 16:9 비율이 되는데 이것은 이 순간부터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는 기억이 아닌가 하네요. 뭔가 좀 어렵고 애매한 부분인데... 정말 이 부분은 황수아 감독님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혹시라도 10일에 공개되는 서태지 버전 뮤비에서 이 궁금증이 해결될 지 모르겠습니다.
소녀가 건네준 쪽지를 보고 등화관제, 통행제한을 무릎쓰고 소년이 용기를 내어 찾아간 그곳은... 온통 엉망진창인 상태에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사라진거죠. 제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이미 소녀의 집은 이 상태였던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소녀가 잡혀가면서 집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은 집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느 정도 예상을 하는듯 합니다. 그러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던 소년은 등화관제가 끝나고 불빛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그곳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되는거죠. 그래서 급히 집을 뒤로하고 뛰쳐나갑니다. 여기까지가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뒤를 이을 서태지 버전에서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모르겠는데요. 현재 화자는 (소녀를 의미하는)아이유양이고 스토리의 중심은 소년입니다. 이것이 뒤를 이을 버전을 아주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인데..... 거참 어렵네요. ㅎㅎ 정말 코난이 되어야 하는건가요? 황수아 감독님... ^^;
잊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에겐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가 않죠
그저 되뇌면서 되뇌면서
나 그저 애를 쓸 뿐이죠
위의 사진을 보고 눈치채셨나요? 이상하게도 소년이 집을 뛰쳐나가는 부분까지는 16:9의 화면비율이다가 이어지는 아가수의 빈집 방문씬에서는 다시 4:3으로 돌아갑니다.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16:9로 나와야 할텐데... 크아악~~~ 왜케 어려운건가요~~~ 암튼 보시다시피 어지러웠던 집은 깨끗해졌고 눈이 쌓였다는 것은 과거의 아픔을 깨끗한 눈으로 덮어 추억(아픈..)으로 남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바람개비를 다시 놓는 것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구요.
소격동이 한참동안 포탈 등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역시나 단순한 노래 뿐만이 아니라 이런 역사적인 아픔을 들춰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서태지님이 잡혀가는것 아니냐... 라는 웃지못할 댓글부터 아가수를 걱정하는 댓글도 보이더군요. 정치적인 색을 아가수에게 입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어떤 성향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니까요.(사실 알만한 분들은 이번 소격동의 선택에 나름 고개를 끄덕이기는 합니다.)
소격동 뮤비는 공개된 설명처럼 아픈 시대상에 의해 상처받은 두 소년, 소녀의 풋사랑의 추억을 보여줍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크게 흥행한 것을 보았듯이 사실 뜨거운 사랑에 대한 아픔보다 왠지 이런 풋풋한 어린 사랑의 아련함이 좀 더 마음에 많이 남는데, 소격동 뮤비에서는 그 아련함과 더불어 아픈 시대상의 스산함까지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뮤비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그 해 여름' 이라는 영화인데요. 이병헌씨와 수애씨가 주연한 영화로 소격동처럼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겪는 두 청춘의 아픔을 그린 영화입니다. 아주 좋은 영화라고 하기보다 당시 시대상이 잘 나와있었고 이 시대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그 해 여름' 정도만 보면 당시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이었는지 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보세요~ ^^;
아웅... 이렇게 길게 쓰게 될게 뻔해서 어제 안썼나 봅니다. 길게 이래저래 썼지만 어찌되었든 해석은 각자 맘대로 하시는거니까요. ^^;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된다 싶은 표절 논란도 있고 소격동에 대한 폄하를 하려는 분들도 계시지만, 막귀인 제가 들어도 소격동에서 들리는 아가수의 디테일한 소화력, 공간감에서 느껴지는 처량함 등 굉장히 완성도 높은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아가수가 평생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한 명의 팬으로서는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벌써 며칠째 소격동을 반복해서 듣나 모르겠어요. ㅎㅎㅎ 그럼 오늘도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이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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