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브로커

브로커의 핵심은 인물의 서사

류겐 2022. 6. 20. 10:50

 

 

사실상 '브로커'의 흥행 기간이 거의 끝나가기 전 정말 감사하게도 '무대인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2주 차에도 인사를 다니느라 수고하신 출연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네요. 지난 주말 토요일에 2회 차로 관람을 하게 되었는데 무대인사가 함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2년 반 만에 지은양을 실제로 보았네요. 어찌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지... ㅠㅠ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한 아쉬움과 여운이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서 무대인사 중에 송강호님이 '브로커'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다고 하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천만을 얘기하곤 하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이 흥행 감독님은 아니라 100만만 해도 엄청난 겁니다. 이전 작품은 국내에서 10만 대였거든요..

 

 

 

 

처음 관람했을 때는 온통 관심이 아이유양의 연기에 집중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다들 그러시지 않았나요? ㅎㅎ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전체적인 인물, 그리고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을 하니 1회 차에서 놓친 듯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3회 차 관람을 한 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더군요. 지금부터는 전체적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므로 아직 '브로커'를 감상하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지난번 글에도 적었지만 '브로커'는 구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흥행하기 쉽지 않은 영화인듯 했습니다. 제가 느낀 '브로커'는 스토리보다는 각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 서사에 집중되어 있었거든요. 혹자는 몇십 분짜리 스토리 밖에 없는 영화를 지루하게 2시간 반으로 늘여놓았다는 말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브로커'처럼 세밀한 인물의 감정 묘사만이 가득한 영화는 불친절하거나 어렵거나 혹은 재미없게 받아들여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은양의 팬이라면 당연히 소영이의 서사가 가장 궁금하실 겁니다. 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브로커'의 핵심인물이자 모든 인물의 감정선을 만들어가는 인물이 아이유양의 배역인 소영이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소영의 이야기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지난 글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브로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보지 못했다면 놓치게 되는 흐름이 굉장히 많습니다. 소영이의 이야기 또한 그런데요. 영화의 첫 장면은 소영이 자신의 아이 우성이를 '베이비 박스' 안이 아닌 그 앞 바닥에 놓으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이 장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각 인물들을 통해 들려줍니다. 

 

 

 

 

영화 초반에 이형사 역의 이주영님은 아이가 계속 바닥에 있었다면 죽었을 거라고 합니다. 이 대사는 초반 소영이가 우성이를 향한 애정이 없어 보임을 강조하게 되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소영이는 자신의 아들 우성이에 대한 모성애가 없다시피 한 인물처럼 보이게 합니다. 영화 속 내내 소영이 우성이를 안고 이동하는 모습도 거의 없죠. 상현 또는 동수 역의 강동원님이 우성이를 안고 다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이 또한 일종의 장치인 거죠. 보육원 원장 부부와의 저녁 식사 장면 또한 그렇습니다. 우성이가 계속 울어도 소영은 전혀 신경도 안 쓰죠. 엄마라면 반사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신경 쓰게 될 텐데 말입니다. 

 

 

 

우성이를 버리고 나서 도피하려던 소영이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화장실 장면이 나옵니다. 소영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서 모유를 짜내어 버리는 장면인데요. 혹시 이 장면을 모유라고 인식하신 분들이 있나요? 아마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라면 모를까 그런 경험이 없는 분들에게는 그냥 일반적인 소변일 거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이 모유를 짜내어 버리는 장면 또한 소영의 모성애가 없음을 강조하는 장치죠. 이 장치는 위에서 말한 보육원장 부부와의 식사 시간에서도 나오게 되는데요. 우성이를 돌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수유를 하는 엄마라면 당연히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 또한 소영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차후에 이야기하겠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라지 못한 소영에게 누군가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런 장면 하나에도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거죠. 

 

 

울진에서 우성이를 입양하려는 부모처럼 세팅된 배우(?)들에게서 동수의 재치로 우성이를 지키게 되자 소영은 이들에게서 가족의 울타리를 느끼고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감기로 열이 나는 우성이를 병원에 데려가 보호자를 자청해주는 모습을 통해 소영은 이들에게서 '선의'를 느끼게 되죠.  그러면서 소영은 점점 더 우성이를 안거나 돌보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잠자던 나의 모성애가 깨어나고 있어~"라고 누가 노래했는데... ^^ 벼랑 끝에 서있을 때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모성애가 가족이라는  안전한 품 안에서 안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깨어나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관람차 안에서 동수는 소영이 우성이를 버린 것이 살인자의 자식으로 남게 하지 않으려고 였다고 합니다. 소영 또한 그것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 소영이 우성이를 그냥 매몰차게 버린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죠. 이 장면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앞선 장면들과 비교해보면 차가운 바닥에 아이를 내려놓은 것, 매운 음식을 생각 없이 먹는 것... 모두 그녀가 우성이에 대한 모성애가 없어서라기보다 단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금 우리가 아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지키고 키워주려면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죠. 

 

 

소영의 서사 중 백미는 서울에서 우성이를 입양하려고 하는 윤씨 부부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사산한 윤씨 부인(극중 호칭이 없어서...)은 우성이가 배고파 울게 되자 젖을 물려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 뒤 우성이에게 젖을 먹이게 됩니다. 이 장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성이에게 직접 젖을 물려본 적이 없던 소영에게 자신이 우성이의 친모이자 우성이가 자신의 젖먹이라는 것을 일깨우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 소영이 '유사가족'인 상현, 동수, 해진을 통해 어머니의 역할을 배워가고 있었다면,  이 장면에서는 비로소 소영이 본능적인 모성애를 깨닫게 되는거죠. 이렇게 '브로커'는 모성애라는 것이 아이를 낳게 되면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인 돌봄과 교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윤씨 부부를 만나기 전까지 우성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던 소영이 이 장면 이후로 우성과의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은 결국 살인죄로 체포될 것이기에 우성이와의 이별은 불가피하다는 것도 알고 있죠. 여기서 '브로커'의 가장 감동적인 서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소영에게서 엄마의 모성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한 동수는 우성이를 보내러 가기 전 상현에게서 소영이 우성이를 위해 새로운 출발을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게 되죠. 이 희생에 대한 결심은 관람차 씬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대신해 소영을 용서한다는 대사 속에 이미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상현 또한 도박 등의 문제로 이별해 있는 자신의 실제 가족과의 희망이 사라지게 되자, 또다른 희망인 '유사가족' 속 소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처럼 말이죠. 

 

 

 

 

솔직히 저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한마디의 단어보다 이런 영화 속에서 긴 서사를 통해 하나의 생명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고 어떤 도움으로 자라나게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큰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태어나줘서 고마워'는 좀 오글거렸어요. ^^; 이미 충분히 영화 속에서 설명이 되었는데 굳이 이런 대사를 직접 해야 했나... 싶기도 했는데 아마도 고레에다 감독님은 꼭 이 대사를 넣어서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원래는 소영의 이야기를 말하고 동수, 상현, 해진 순으로 쭉 말해보려다 결국 소영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여기까지 하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제 글은 아이유 위주니까요. ^^;  결국 소영의 출소 이후 서로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열린 결말을 보여주었기에 제 마음속에서 소영, 우성, 동수, 상현, 해진은 한 가족으로 잘 살아가고 있네요. '브로커'는 그렇게 제게 한 권의 좋은 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친절한 영상으로 머릿속에 쏙쏙 넣어주는 세상 속에 한참 생각하고 남는 여운에 취하게 하는 영화를 만나게 되어 좋네요. 다시금 '백만 배우'가 된 지은양에게 축하를 보내며 이만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아이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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