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노래 - '사랑이 잘' 그 4년 후
앨범 전체에 지난 20대 아이유의 모든 노래들에 대한 오마쥬로 가득하기에 이 '돌림노래'를 들으면서도 딱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바로 혁오님과 함께 부른 '사랑이 잘' 이죠. '사랑이 잘' 은 당시 '밤편지' 다음으로 선공개되며 실제 앨범인 4집 정규 [Palette]가 나오기 전까지 차트를 지켜주는 훌륭한 역할을 해내었습니다.
이 노래가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 헤어지기 바로 직전의 권태로운 모습을 당시 동갑내기 두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갔는데요. 서로 1절과 2절의 가사를 완전히 분리해서 만들어 스물 다섯 여성과 남성의 시선이 서로 이렇게 다름을 재치 있게 풀어갔습니다. 대표적인 가사가 노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혁오의 파트인 '지갑 거기 두고 갔어'에 대한 해석인데요. 아가수는 이 노랫말에 대해서 정말 짜증이 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지겨운데 지갑을 두고 가서 다시 또 봐야 하는 생각이 견딜 수 없는 거였죠. 혁오님은 뭐 대략 그럴 수도 있다.. 였지만요. ㅎㅎ
아이유양의 각 노래들에 대한 집착(?) 같은 재치는 노래 가사에 잘 나옵니다. '사랑이 잘'에서 나오는 "다섯 번째 미안하단 말이 이젠 너에게는 지겨운 건지"라는 파트인데요. 당시에는 그냥 다섯 번이라는 단어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돌림노래'에서 그 숫자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잘 알려주죠. DEAN님의 파트에서 "선 넘을 뻔 했던 건 인정해 근데 이제 아홉 번째"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다섯과 아홉은 바로 스물다섯과 스물아홉 지은양의 나이를 말해주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알게 되면서 참.. 대단한 서사와 집착 같은 게 보이는구나.. 했습니다. ^^
'사랑이 잘'에서 혁오님의 보컬은 좀 찐득하다고 해야 하나... 그와 달리 이번 '돌림노래'에서의 DEAN님의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표현되었네요. 스물 다섯의 권태로운 연애 말기의 그 연인들이 헤어진 후에 그 인연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모습이 바로 '돌림노래' 같은 모습일까요? 그 4년 이후 권태로움을 아가수는 익숙함에 벗어나기 싫어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으로 표현했네요. 이번 [LILAC]의 테마 자체가 이별이기 때문에 이별에 대한 곡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이런 각 나이대 별로 아이유양 만의 해석을 계속 들었으면 합니다.
빈 컵 - 질려버렸어 지쳐버렸어
돌림노래가 약간은 귀여우면서도 아직까지 감정이 조금 남아있는 상황이라면 '빈 컵' 은 그마저도 없는 허무함 그 자체인 듯합니다.
타오르던 감정은 부스러기들로 남아
이런 가볍기도 하지 겨우 이게 다였나 봐
이 정도로 다 타서 사라질 정도라면 꽤 오랜 시간과 감정의 소모가 있었겠죠. 이번 [LILAC] 은 사랑과 이별의 다양한 모습들(예전 앨범들도 그랬지만..) 이 현재 스물아홉의 아이유를 통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빈 컵'의 트랙 순서처럼 결국 마지막에 찾아오는 전부 소모된 감정이 그 사랑과 이별이 마지막인 듯싶어요.
만약 '빈 컵' 이 다른 가수가 불렀거나 다른 앨범에 실렸다면 그다지 이해도 설득도 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LILAC]의 서사 가운데 배치되어 있으니 그 내용도 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제게는 [LILAC] 앨범의 모든 노래 가운데 가장 어려웠습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왔거든요. 다른 노래들은 20대 지은양의 서사들을 다 담고 있다고 봤는데 이건 저, 그리고 세상은 모르는 아이유양만의 감성인 것 같아서요. 물론 개인적인 지은양의 사랑, 이별을 우리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으니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
[LILAC]에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빈 컵'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약간 허전함,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와 나의 바다'는 아가수만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라 통상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거든요. 이 노래가 예전 [Palette]의 '마침표'처럼 나중에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랑이 끝나도 다시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듯이 어느 가을에 '빈 컵'을 들었을 때 새로운 감정이 찾아오길 바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돌림노래와 빈 컵은 리뷰하기가 참 힘들었네요. 이후의 노래들은 정말 얘기할 내용이 산더미라서 머릿속에서 그야말로 대잔치가 벌어지는데 이 두 곡은 ... 좀 안되더라구요. ㅎㅎ 아무래도 이번 앨범이 기존 아가수의 작업 방식과 좀 달라지기도 하고 제 음악 소양이 이젠 도무지 따라갈 수 없어서... ㅜㅜ '아나바다', '어푸', '에필로그'는 정말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계속 두근 거리는 곡들이라... 쓰면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얼른 '아나바다'로 가고 싶네요. 아이유 참 좋다~~